KB패밀리
[영업가족] 지나온 13년 앞으로가 가야 할 30년
2017.08.22. KB손해보험
보험 영업과 팀원 관리를 병행하며 바쁜 보험인으로 고객과 만나는 황준영 RFC. 지난 13년과 앞으로 가야 할 30년 사이에서 희로애락 듬뿍 담긴 보험 인생 13년을 되돌아본다.
2003년 첫 만남, LG화재 LCS에 지원합니다.
“황준영님,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LG화재 LCS(Life Consulting Specialist)에 지원한 황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음, 나이는 27세이고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군요. 우리 회사에 지원한 동기가 무엇인가요?”
“저 스스로 사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창업 준비를 하던 중 자금 마련하기가 어려웠고, 아이템도 고민을 해보았는데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보험 세일즈는 초기 자본비용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제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사업의 영역, 매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소득은 자연스레 뒤따르게 되는 것이고요. LCS 1기 모집 광고를 보고 순간 제가 가야 할 곳이구나 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당시 면접관이셨던 상무님, 부장님께서는 모두 퇴임하셨고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하나둘 이직을 하거나 보험영업을 그만두었다. LG화재에서 LIG손해보험을 지나 KB손해보험으로 사명이 바뀌는 동안 나의 고객은 처음 맺은 인연 그대로이다. KB손해보험에서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팀장과 매니저로서 역할을 맡아온 시간 동안 나의 고객 또한 미혼에서 초등학교 학생을 둔 학부모로, 한 회사의 대리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며 세월의 부침에도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왔다. 지난 13년 동안 보험영업을 하면서 가슴 속 깊이 자리잡은 좋은 기억과 본의 아닌 실수 그리고 보험인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004년 12월, 함박눈이 내리던 첫 계약의 날
입사 1년 만에 처음으로 50만 원이 넘는 고액 건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나름 준비도 많이 하고, 사전 연습도 했지만 실전에 대한 압박감이 짓누르던 당시였다. 오죽하면 고객이 상담을 미루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고객님, 연금보험은 지금이 아닌 고객님의 먼 미래를 준비하는 자산입니다. 장밋빛 미래는 누구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하실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선택이 마침내 연금을 수령하실 때 저 황준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려 주시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계약자 서명란에 사인을 할 때까지도 솟아오르는 감정을 그저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문 밖을 걸어 나왔고 한번 더 고개를 돌려 문이 닫혀 있음을 확인한 그때, ‘악’ 소리와 함께 그야말로 쾌재를 불렀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수많은 시행 착오로 인한 실패를 보상 받았다는 자기 위로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2시간 넘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날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더구나 하얀 눈이 내리던 겨울밤이었기에.
2010년 봄, 인터넷 보험영업의 종지부를 찍다
서울에 마땅한 연고가 없어서 지인
위주의 영업이 한계에 봉착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보험관련 질의 게시물을 발견했다. 당시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가망고객을 만날 수 있는 주요 통로이자 기회였다. 모 포털사이트에서 보험관련 질문을 발굴하며 하루에 열 건 정도의 답변을 꾸준히 달았다. 자연스럽게 추가 질의응답이 오가며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상담으로 이어졌다. 퇴근 후에도 책상 앞에 앉아 약관을 펼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로 2005년부터 5년 동안 쉼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디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니 홍보성 게시물 등재로 아이디가 영구 정지되었다는 것. 5년 동안 온라인으로 상담하며 이루어진 계약이 어림잡아 300건이 넘는다. 당시에는 많이 허망했지만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고 보험관련 일이 생길 때마다 먼저 전화를 주시는 고객들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미당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학습이 지금의 보험전문가로서의 나를 키운 팔할이 아닐까 싶다.
2014년 12월, 영업과 관리자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서다
보험영업과 관리자. 두 가지 길을 병행하고 싶었지만 선택의 기로에 섰던 당시에 자문자답을 몇 번이고 해보았다. 과거 선배들의 사례에서 두 가지 일을 보란 듯이 이겨낸 경우도 드물었기에 고민은 커져만 갔다. 과거에 몇 번 팀장 임무를 맡았지만 지점 통폐합, 개인적인 사유 등으로 중도에 그만둔 적이 있었다. 지금은 보험 영업과 관리직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지만, 당시의 선택이 한층 나를 발돋움하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팀장으로서의 중히 여기는 역할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팀원들의 장점을 극대화해 영업 활동에 활용하는 방안을 펼쳤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지속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둘째, 소통의 문화를 정착하고 RFC로서 자긍심 고취, 선의의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 역할을 제공했다.
단체 대화방에 정보사항 공유, 계약 축하, 팀 자체 시상 진척사항 전달, 주요 소식 공지를 전하다 보니,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돼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이해하는 팀 문화가 정착됐다.
셋째, 동반성장을 통한 소득을 창출했다.
특출난 한 사람의 매출로 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크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모두 최소한의 매출 이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살펴주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다는 팀원도 있었지만, 합심하고 서로 격려하며 달려온 결과,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마감을 포기하거나 건너뛰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30년을 위해
마라톤 42.195km 코스를 2시간 10분 이내로 완주하려면 100m를 18초 단위로 꾸준히 뛰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쉼없이 달려가기란 버거운 일이다. 한 두 번 역경을 만나다 보면 내가 뛰고 있는 이유조차 잠시 잊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목표 의식의 상실, 그것은 큰 위기를 초래한다.
요즘은 보험 영업 하기가 쉽지 만은 않다. 그런데 보험 영업이란 게 언제 편했던 적이 있던가?
이럴 때일수록 급변하는 보험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력을 쌓아야 도태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이 나에게 보험 영업의 기초를 닦아주는 토대의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30년은 기둥도 세우고 지붕도 얹으며 멋진 집을 완성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못했다.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기에 희망이 보인다.
KB손해보험 RFC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 나를 믿고 보험을 맡겨준 고객에게는 고마운 존재. 그리고 무엇보다 두 아들에게 꿈과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아빠로서의 삶. 마지막으로 앞으로 펼쳐질 내 보험 인생 30년. 설렘 그 이상으로 기대를 꿈꾼다.
※ 해당 콘텐츠는 KB손해보험 <희망플러스>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