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리포트

찾아오는 인파만큼 깊은 역사가 담겨 있는 명동 다크투어리즘

2019.08.14. KB손해보험

여러분은 ‘명동’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파, 그리고 빼곡한 빌딩숲과 화려한 번화가의 이미지가 떠오르실 텐데요, 최근 명동이 이런 이미지와 조금은 동떨어진 ‘다크투어리즘’(관광을 위한 일반 여행이 아닌 전쟁이나 학살 등의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 장소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 명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명동문화공원’

명동성당 앞에 위치해 있는 ‘명동문화공원’은 명동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곳인데요, 도심 속 화려한 중심지인 명동은 조선시대에는 ‘명례동(明禮洞)’ 또는, ‘명례방(明禮坊)’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명치정(明治町)’이란 이름의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기도 했는데요, 명동이 위치한 ’중구’라는 행정구역의 이름이 식민지의 잔재라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서울에 중구가 생긴 건 일제 강점기인 1943년 행정구역이 남부·서부 등 부 단위에서 종로구 등 ‘구제(區制)’로 바뀌면서부터로, 일본인들이 ‘중구’라는 이름에 ‘경성부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일본인 밀집 거류지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경성의 5대 백화점 중 4개가 중구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이를 통해서도 당시 일본인들이 중구라는 이름에 ‘경성부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담아 일본인 밀집 거류지를 만들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일제의 종교탄압과 민주화의 역사가 한곳에 ‘명동성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명동성당은 1898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유적지로 고딕양식의대표적인 교회당 건물인데요, 일제강점기의 명동성당은 일제의 감시와 규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930년대 들어 종교단체에 전면 통제를 가한 일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말기에 접어들면서 철재(鐵材)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명동성당 제대 앞 난간을 강제로 철거해가기도 했습니다.

1945년 초에는 경성부의 일본인 관리가 명동성당 아래에 지하 터널을 뚫겠다며 공사 승인을 요구한 적도 있었는데요, 서울이 폭격 당할 때를 대비해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겠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성당 측은 성당 밑에 굴을 파면 지반이 약해져 성당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면서 공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으나 공사는 강행됐는데요, 다행히 8·15 해방을 맞아 공사는 중단됐습니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유신시대인 1975년 2월 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및 국민투표 거부운동’과 이듬해 3월 ‘민주구국선언’은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1987년 6월 ‘박종철 고문치사은폐조작사건규탄 범국민대회’로 시작된 명동성당 사태는 학생·시민 등 600여 명의 6일 단식농성으로 이어졌는데요, 이 때문에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이들의 신병처리를 놓고 당국과 중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3. 대한민국 문화예술 1번지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은 1934년부터 1973년까지 영화관, 공연장, 예술극장 등 한국문화예술의 선구자 역할을 해온 옛 ‘명동 국립극장’ 건물을 복원하여 새롭게 탄생한 연극 전문 공연장인데요, 명동예술극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에 ‘명치좌(明治座)’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일본 영화를 상영했던 곳입니다.

해방 이후 ‘국제극장’으로 간판을 바꿨다가, 1948년에는 서울시가 인수하면서 ‘시공간’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연극 공연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명동국립극장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면서 대한민국 문화예술 중심지가 됐는데요, 문화관광부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지난 2009년 연극 전문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명동예술극장은 1973년까지 한국문화예술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던 곳으로, 서울 시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개관 당시인 1930년대 모습이 남아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4. 명동에서 만나는 애국지사

① 이재명 의사

<이미지 출처 :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는 1909년 1월 동지들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평양역에 대기했으나 안창호의 만류로 단념하는데요, 이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소식이 전해지자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을 암살하기 위해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습격해 칼로 찔렀습니다.

하지만 중상을 입히는 데 그치고 체포되는데요, 이 사건으로 이재명 의사는 1910년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물 셋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현재 명동성당 입구 우측 보도에는 이재명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의거비가 위치해 있습니다. (※ 의거비에 적힌 내용이 실제와 조금 차이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② 이회영ㆍ이시영 6형제(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이항복의 후손으로 명문가의 자제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은 을사조약 체결 후인 1907년 4월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를 발족하고 같은 해 6월에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이회영 선생은 초대 부통령을 지냈던 이시영의 형으로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6형제 모두가 중국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10년 동안 3,500명의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해 독립전쟁을 주도했는데요, 1919년에는 상해입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1920년대에는 북경을 중심으로 아나키즘 독립운동과 의열 투쟁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32년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순국하고, 다른 형제들도 망명지에서 사망했는데요, 임시 정부에 참여했던 이시영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광복 후 초대 부통령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명동성당 옆 골목 안에는 이러한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과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③ 나석주 의사

<이미지 출처 :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나석주 의사는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결사대를 조직했는데요, 그는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 활동과 친일파 처단 활동에 앞장서다가 1920년 9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1926년,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파괴하기 위해 국내로 다시 잠입해 그해 12월 28일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죽이고, 이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 다시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했는데요, 추격하는 경찰과 접전을 벌이던 중 일본경감 다하타 유이지 등을 사살한 후 총으로 자결했습니다.

나석주 의사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일제와의 계속적인 투쟁을 당부하는 외침으로 유언을 대신했는데요,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였다. 2천만 민중아 쉬지 말고 분투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석주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이곳은 나석주 열사가 일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경찰과 총격전 중 자결한 의거기념 터로, 현재 이곳에는 KEB하나은행 본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상 근처에 1994년 세워진 ‘나석주 의사 의거기념터’ 표지석이 위치해 있습니다.

 

5. 해설사와 함께 하는 도보관광 ‘명동 역사문화 투어’

<이미지 출처 :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중구청 문화관광과에서는 해설사와 함께 하는 도보관광 ‘명동 역사문화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명동 역사문화 투어’는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명동 문화를 돌아보는 도보 탐방으로, 명동성당 맞은편인 명동문화공원을 기점으로 유네스코회관 앞까지 14개 지점을 지나는 코스입니다. 코스 길이는 2km로 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여 총 9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요, 8월은 혹서기로 프로그램 운영을 하지 않고 9월부터 운영이 재개되니 참고해주세요!

– 탐방코스 : 주요설명 14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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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명동문화공원 → ② 명동성당 → ③ 윤선도 집터 → ④ 이회영ㆍ이시영 6형제 집터 → ⑤ 장악원터(동양척식주식회사터, 나석주의사 동상) → ⑥ 조선취인소 터 → ⑦ 한국전력 사옥 → ⑧ 남대문로 → ⑨ 중국대사관거리, 한성소학교 → ⑩ 한국은행 앞 광장(신세계백화점, 한국은행, 서울중앙우체국) → ⑪ 대연각 뒷골목 → ⑫ 중앙로(옛 문화명소인 명동아동공원터, 오비스캐빈터, 쉘부르터 등) → ⑬ 명동예술극장 → ⑭ 유네스코회관(문예서림터, 은성주점터)

– 운영기간 : 화, 목, 토
– 운영시간 : 오전 10시, 오후 2시 (※ 해설소요시간 약 90분)
– 참여대상 : 시민 누구나(무료)
– 참여방법 :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신청 및 전화신청(☎ 02-3396-4623)
– 모집인원 : 4인 이상 출발 가능
└ ※ 4인 미만 시 해설프로그램 미 운영(3일전까지 신청)
└ ※ 4인 이상 단체신청 시 수시로 해설사 매칭 가능(5일 전까지 신청)
– 집결장소 : 명동문화공원
– 교통편 : 을지로입구역 5번 출구, 을지로3가역 12번 출구, 명동역 5, 8번 출구

 

지금은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대표 명소 명동,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명동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장소가 참 많은 듯 한데요, 명동에 방문하게 된다면 한 번쯤 이곳에 들러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