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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손해보험 insight
2017/08/26

[영업가족] 포기하지 않으면 쨍하고 해 뜬다

“다슬씨, 시내서 밥 한끼 먹자!”
위 아래 집에서 함께 몇 년 동안 지내온 친구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다. 약속 자리에는 친구가 다니는 보험회사이자 지금 내가 다니는 우리 회사의 지점장님이 나와 계셨다. 13년 전, 처음 그날로 돌아가 본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주문을 외워보며 방황과 실패를 거쳐 끝내 이겨낸 나의 영업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이제 보험회사에서 일해!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있던 차에 입사할 것을 권유 받았고, 고민 끝에 제안을 승낙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엄마, 이제 보험회사에서 일하게 됐다!”고 큰소리 쳤지만 보험 일은 내게 너무나 낯설고 막연하기까지 했다. 한 달 급여가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직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잘못 되면 가족들에게 뭐라고 할까, 함께 일해본다고 했지만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던 나날이었다.
“여보, 당신 동창모임이 언제야? 나 좀 데려가!” 남편 동창회에 따라갔고, 서로 형편을 잘 아는 남편 친구가 화재보험 하나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또 누구에게 가서 부탁하지? 어디로 가지?” 매달 새로운 계약을 창출해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빛의 속도로 지났고 마감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친목모임에서 몽골 여행을 가게 됐다.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보험 영업 때문에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는데, 잘됐다는 심정으로 짐을 꾸렸다. 화재보험 단 한 건 해놓고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도망간 꼴이었다. ‘마감’이라는 개념을 적응하지 못한 나는 일한 만큼만 받으면 된다는 배짱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은 너무나 설레고 흥분됐다. 낯선 땅, 새로운 문화. 첫 해외여행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개척활동은 또 어떻게 할지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었다. 오로지 하늘과 땅,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달리고 느끼는 일에만 올인했다. 7박 8일의 긴 여정을 끝으로 일터에 돌아갈 생각에 암담했다. 지점장님께는 뭐라고 말할까. 스멀스멀 걱정이 몰려왔다.

“보험 일을 다시 시작해보자!”

몽골에서 만난 한 대학생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게르(몽골 전통가옥)에 살면서 문명의 혜택과 교육의 기회를 잃은 유목민들을 제 힘으로 돕기 위해 공부하는 고아 출신인 몽골의 국립대학생. 실로 대단한 결심이었다. 한달에 몇 만 원만 지원하면 전도유망한 청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열악한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그 학생을 보며 나는 역으로 용기를 얻었다. 숙제를 팽개치고 도피 여행 온 내 처지도 한심했지만 학생의 처지를 생각하니 그들의 절대빈곤과 내 걱정거리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몽골에서의 심오한 결단을 떠올리며 강행한 첫 출근.
“다슬씨, 저 좀 봅시다. 그래요,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당시 무책임하고, 개념없이 행동한 내게 지점정잠은 말씀을 더 잇지 않으셨다. 다만 “앞으로 계혹 보험을 할 생각인가” 단호하게 물었따. 나는 곧장 “다음 달부터 마감을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되레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여전히 앞날은 깜깜했고, 갈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팀장님께서 개척을 권유했다. 인천에 지낸 경험이 있어서 인천공항을 개척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가방 속 판촉물은 왜 그렇게 무거운지. 거리도 멀고 공항 특성상 영업하기 쉽지 않았지만, 하루 신규고객을 목표한 만큼 확보했다.

 
 
 
 

쨍하고 해뜰날 ‘아줌마’에서 ‘여사님’으로

어느 날, 출근길에 어떤 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자동차보험 만기 날짜에 도래해 지금 당장 계약을 갱신해야 했던 고객. 개척으로 만난 나의 첫 계약자였다. 지인에게 부탁한 계약이 아닌, 내 힘으로 얻은 소중한 제 1호 계약. 설레고 흥분됐다. 거액 계약은 아니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그날 이후부터 만남에 비례해 계약 건수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소득은 매달 오름세를 탔다. 두렵기만 했던 마감이 기다려졌다. 아이들은 대학, 대학원까지 순조롭게 졸업을 했고, 후원했던 몽골 청년도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줌마, 업무에 방해되니까 좀 나가주세요.” 하던 사람들이 “여사님,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하면서 오히려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보험 영업을 하면서 인생의 순리를 배웠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개척이란 생면부지의 사람을 찾아가 어필해야만 하는 ‘모험’ 그 자체이다. 거절의 두려움, 배척당하면 어떡하나 창피함도 있었지만 다시, 또 다시 시도했다. 현재 보험 영업한 지 13년 차 된 지금은 현장에 나가 계속 고객풀을 확보하고 있다.

 
 
 
 

KB손해보험 설계사라서 행복해

내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능동적으로 디자인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소득을 계획한 만큼 창출하며 세부적으로 조절가능한 일이 얼마나 되는가? 누군가 타인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고 마음껏 콘트롤 할 수 있어서 자유롭고 편하다. 아주 작은 일부에 속하지만 수고롭게 번 돈이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이 나를 견디게 한 동력이 된다.
보험이란 갑작스럽고 우연한 사고의 ‘대비책’이다. 고객의 고충을 들어주고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보험일이야말로 의미 있는 것이라 자부심도 갖게 된다. 또, 보험이란 무형의 상품이기에 판매하기도 쉽지 않지만, 신뢰 관계가 한 번 형성되면 고객의 마음을 얻기 쉬워 기분 좋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KB손해보험의 LC, 보험설계사라는 내 직업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성취감, 만족감, 당당함. 이 모두는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어느덧 인생의 후반을 살아가는 나. 노후 준비를 계획하면서 정년 없이 일할 수 있고, 얼마든지 유의미하고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나의 일에 감사하다.

 
 
 
 

포기란 없다!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여유를 잃지 않으며 이제는 베풀 때라는 생각. 나의 경험과 노하우를 더불어 삶의 지혜까지. 내가 가진 어떤 것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나구고 싶다. 후배들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마음 먹은 것이 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반드시 시도해보라고. 그간 나를 신뢰하며 함께해준 고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철저한 계약 관리를 제공하는 의무가 남았다. 이제 고객들과 인생의 고됨,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살아가는 인생 동반자 됐다. 서로 의지가 되고 격려해줄 수 있는 관계. 보험설계사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선택이었는지 감사할 뿐이다. 요즘은 신규계약보다 보상 처리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고객이 있어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에 어떤 업무이든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식구들 밥 준비해놓고, 현고나에서 향수 한 번 칙! 뿌리고 출근할 때. “오늘은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는 기분 좋은 기대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성과를 이룩한 만큼 넉넉히 대해주는 회사가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의 나, 발걸음 아주 가볍다!

 
 
 
 

※ 해당 콘텐츠는 KB손해보험 <희망플러스>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