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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에 걸린 가족과 유쾌하게 일상을 보내는 방법 –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펀자이씨툰 작가 인터뷰
2026.06.12. KB손해보험
*본 인터뷰는 KB손해보험 유튜브 <제자리로 돌아오면 모두 다 일상> 2화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전문 간병인들도 ‘이 병만은 걸리면 안 된다’고 말하며 두려워하는 병, ‘알츠하이머’. 소설가이자 상담가 우애령 작가님은 8년 전 처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이 찾아오기 전에도 재치가 넘치던 우 작가님은 알츠하이머와 함께 하는 일상 역시 유머 넘치게 받아들였는데요.
우애령 작가님의 딸, 엄유진 작가님은 이러한 어머니와의 일상을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라는 만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20만 팔로워에게 감동과 유머가 함께하는 일상을 전하는 엄유진 작가님과 ‘알츠하이머에 걸린 가족과 사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엄유진 반갑습니다. <펀자이씨툰>,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등 인스타그램에 일상툰을 연재하고 있는 엄유진 작가라고 합니다.
Q. 어떻게 보면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작가님의 생업이자 본업인데, 매일 일상을 기록하는 걸 보며 정말 성실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유진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기록을 해왔는데, 기록을 세 가지 방식으로 하거든요. 하나는 인스타 툰으로 이야기를 그리는 거고, 또 하나는 다이어리에 이미지로 정말 사적인 내용을 그리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인터넷 글로 제 생각들을 기록하는 거고요. 근데 요즘은 일상이 바빠서 별로 그리지 못했어요ㅎㅎ.
살아보니까 생각보다 잊어버리는 게 되게 많더라고요. 근데 나중에 다시 보면 즐거웠던 때도 있고, 저도 모르게 변해가고 있는 저의 이전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게 재미있어서 본격적으로 기록을 하고 있어요.
Q. 작가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일상툰을 보면 가족분들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을 것 같아요.
엄유진 개인적인 기록에서는 딸하고 남편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공개적인 기록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와요. 왜냐하면 아이 이야기는 아이가 크면서 저만 즐거울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 8년 전부터 기억을 잃기 시작하셨는데,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고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시는지가 제가 보기엔 굉장히 좋았어요. 감동적이었고요.
Q.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하는 작가님의 일상을 기록한 결과물이 바로 <순간에 달리는 할머니>인 거잖아요. 이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신 거예요?
엄유진 저희 어머니가 원래 소설가셨는데 글을 굉장히 잘 쓰셨어요. 근데 기억이 깜빡깜빡하시면서 글을 아예 안 쓰시니까 제가 너무 아쉬워서, 엄마가 기억이 안 나는 상태로라도 시인 이상처럼 한 줄씩만이라도 써보면 재미있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봤더니 어머니가 딱 거절하시더라고요. “점심 방금 먹은 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무슨 글을 쓰니”라고 하셔서, 제가 “그럼 내가 대신 기록하면 어때?” 했더니 어머니께서 “그럼 뭐, 순간에 달리는 할머니란 말이니” 이렇게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제가 그거를 그대로 제목으로 정했어요.
Q. 누가 이 문장을 만들었을까 했는데, 어머니가 그냥 순간적으로 툭 던지신 거였네요.
엄유진 네, 저를 놀리시려고 하신 말씀이었는데 (웃음) 그래서 제가 좀 당당하게 이 기록을 하고 있어요. 시간은 좀 연속적인 개념이잖아요. 근데 ‘순간’은 정말 저희 어머니처럼 갑자기 어린 시절로 갔다가, 갑자기 과거로 갔다가, 또 미래로 갔다가 하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시니까, 딱 걸맞은 제목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Q. <유퀴즈 온더 블럭>을 통해서 어머니와의 일상을 잠깐 볼 수 있었는데, 어머니가 말씀을 너무 재밌게 하시던데요.
엄유진 순발력이 있으시고, 너무 웃기세요. 농담을 잘하셔서 일단 대화하기 즐겁고, 상담을 오래 하셨어서 고민을 이야기하면 굉장히 재밌게 대답해 주시니까 더 물어보게 돼요.
Q. 작가님이 그린 웹툰을 어머니가 보시고 반응은 어떠세요?
엄유진 제가 통통한 몸집으로 그린 캐릭터를 보시고 “너 고소할 거야” 이러시던데요. 책이 처음 나온다고 원고를 보여드렸을 땐 좀 날씬하고 예쁘게 그려달라고 하셔서 그 농담을 편집자님한테 전해드렸더니 반영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마술처럼 순간을 달리니까, 어떤 때는 할머니였다가 어떤 때는 소녀가 됐다가, 그렇게 반영해 주셨더라고요.
평온한 일상에 알츠하이머가 찾아온 날
Q.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신 이후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예요?
엄유진 한 8년 정도 되셨어요. 8년 전쯤에 이미 진행이 되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 어머니가 한참 활발하게 강의도 하시고 글도 쓰시던 때라, 제가 매니저처럼 따라다니다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원래 그런 분이 아닌데, 갑자기 약속을 잊거나 가방을 잃어버리시는 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병원에 모시고 가도 어머니가 순발력이 좋으시니까 모든 시험을 다 통과하시고, 매번 “딸이 좀 과민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계속 문제가 생겼고, 결국 1년 뒤에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 받고 진단을 받으셨죠. 저는 그때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속이 시원했어요. 이제 병명을 알았으니, 그에 맞게 대처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Q. 어머니도 받아들이셨을 거 아니에요.
엄유진 어머니는 저보다 더 빨리 받아들이셨어요. 검사 받을 때는 굉장히 거부를 많이 하셨었는데, 진단 결과가 나온 다음에는 바로 강의를 다 정리하시고 되게 대범하게 나오셨어요.
어느 날 어머니랑 같이 밥 먹고 놀다가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바로 전화가 와서 “유진아, 요즘 잘 지내니?”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아니,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바쁜데” 이러면 어머니가 “나도 잊어버리느라 바빠 죽겠는데, 너만 바쁜 줄 아니” 이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그렇게 당당하신 거죠. 이 병에 대해서 잘 아시고 어떻게 진행될지도 아시지만, 그 시간들을 다 슬픔에 젖어서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딸이자 작가로서, 기록의 원칙
Q. 엄마와의 일상을 보낼 때는 딸로 지내시지만, 사실 그 일상을 기록할 때는 또 작가로서의 역할을 하시잖아요. 기록할 때 작가로서의 고민이 있으실까요?
엄유진 고민까진 아닌데, 너무 솔직해지고 싶은데 참는 게 있어요. 저는 기록할 때 원칙이 하나 있는데, ‘가식적일 거면 안 하는 게 낫다’예요. 정말 모든 건 제가 느꼈기 때문에 나와야 하는데, 제가 너무 힘들어서 보는 사람들을 침울하게 할 것 같으면 그때는 기록을 멈춰요. 대신 일기장 같은 개인 기록이 풍성해지죠. 그렇게 한 번 소화하고 나면 나중에 다시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Q. EBS 방송에 출연하신 걸 봤는데, 어머니 이야기 하실 때 지금도 그렇지만 되게 밝고 유쾌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말씀하시는 게 굉장히 인상 깊었거든요. 그런데 그 마지막에, 엄마가 나를 잊게 됐을 때를 상상하는 작가님의 표정도 기억에 남는데요. 엄마가 작가님을 처음 잊었던 순간은 어땠어요?
엄유진 7년 전쯤이었어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제 사촌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조카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알고 보니 어머니가 저를 이모로 착각하신 거였어요. 그때는 정말 소름이 쫙 끼쳤어요. 눈을 보면서 대화하고 있었는데,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인지를 하신 거였으니까요. 그때는 좀 놀랐었는데, 이게 겪을수록 이것도 일상이 되더라고요. 그러시다가도 항상 다시 돌아오시니까.
Q. 저라면 만날 때마다 불안해서 나를 알아보는지 계속 확인했을 것 같아요.
엄유진 어느 순간 어머니가 불안해 하시는 눈빛을 봤어요. 빨리 답을 찾아서 저를 상처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걸 몇 번 보고 나서는 ‘시험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정말 혼란을 겪고 계시는 거고,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 이후로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 딸 왔어” 이렇게 말하면서 들어가요.
재밌는 건, 상대방이 정확히 누군지 몰라도 묘하게 그 맥락은 다 기억하세요. 저한테는 “유진아” 이런 톤으로 말씀하시는데, 제 동생한테는 보자마자 “얌마” 이렇게 말씀하신다든지. 잘 기억을 못하셔도 이 사람이랑 있으면 안전하다, 이 사람은 낯설다 이런 건 잘 아시는 거죠. 그리고 대화가 너무 재치있어서 지금도 제가 많이 배우고 있거든요. 그래서 ‘기억’이라는 영역이랑 ‘통찰’의 영역이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사실 누구보다 딸과 가족을 기억하고 싶은 건 어머니이실 텐데요.
엄유진 인스타그램을 통해 독자분들의 질문을 받아 온라인 상담소를 연 적이 있는데요.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않고 싶은 게 뭐예요?”라는 질문에 어머니가 “애들 이름”이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저희를 잊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저희는 이미 알고 있죠.
그런데 제 동생이 해외에 있다가 거의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였어요. 저희가 파티도 하고 즐겁게 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어머니가 다음 날 전혀 기억을 못하시는 거예요. 다른 걸 잊어버리는 건 늘 미련 없이 “잊어버리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었는데, 그때는 좀 충격을 받으셨어요.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만난 기억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 처음 문을 탁 닫고 들어가서 흐느껴 우시는데,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가족
Q. 사실 저는 다 큰 자식과 부모가 소파에 앉아서 오손도손 대화하는 게 어쩐지 조금 어색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대화를 잘 나누는 가족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근데 유진 작가님의 가족은 대화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 조언도 구하고 하시는 걸 보면서 너무 좋았어요.
엄유진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재미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잔소리나 “이렇게 해야 된다” 같은 평가를 안 하셨으니까, 같이 있으면 즐거우면 같이 있고 싶은 거겠죠.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 다 맞벌이하시고 바쁘셔서 사형제들끼리 투닥거리면서 자랐고, 부모님은 딱 보호자의 역할을 하신 거예요. 근데 오히려 알츠하이머 진단받으신 다음에 기록하면서 여러 가지를 여쭙고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면서 더 친해진 것 같아요.
Q. 작가님과 어머니의 관계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완벽한 가족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엄유진 ‘완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엄청나게 커요. 실제로 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는데, 정신이 없으신 상태였는데도 그 말을 듣자마자 “완벽한 가족은 가족도 아니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가 가족 상담을 오래 하셨는데, 늘 상담하실 때 위로부터 시작하시더라고요. “많이 힘드셨죠” 하고 먼저 공감을 해주시는 거예요. 본능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낄 수 있게 풀어주신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요. 어쨌든 가족은 성별도, 나이도, 하고 싶은 것도 다 다르고 다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굉장히 약할 때는 다른 사람이 강한 상태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들이 한 울타리 안에 사는 게 가족인데, 거기에 ‘이상적이고 완벽한 성공’이라는 말을 붙이면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저는 그 ‘불완전한 존재’라는 말이 좋았어요. 제가 어리고 실수를 많이 했을 때 어머니가 큰 지붕이 되어 주셨던 것처럼, 지금은 제가 강해져서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어울려서 함께하면 훨씬 좋은 거고, 그게 가족인 것 같아요.
딸에서 엄마로 — 육아 이야기, 그리고 김치찌개
Q. 작가님 일상에 보면 많은 가족 구성원분들이 나오는데, 엄마로서의 일상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최근에 딸 공부 때문에 고민이 있으셨다고요.
엄유진 공부는 제 고민이 아니고 딸의 고민이긴 한데, 초등학교 때 저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딸한테도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큰 코 다치면 하게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선행 학습이 너무 많다 보니 애들이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그러면 저도 아이가 만족할 만한 레벨로 끌어줘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돼요. 저는 남을 바꾸려고 하거나 잔소리를 하는 게 체질에 맞지는 않는데, 이 아이가 저한테 의지하면서 도움을 청하니까 외면할 수도 없고, 끌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면 제 자아의 연장선상에서 전에 없던 간섭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Q. 이 부분을 어머니께 여쭤보신 적 있으세요?
엄유진 네, 잔소리 얘기로 여쭤봤더니 김치찌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김치찌개를 끓일 때 모든 재료의 맛이 딱 우러져 나오면서 맛있어지는 시점이 있는데, 더 맛있게 끓이려고 계속 끓이면 오히려 맛을 상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마디 두마디 더 하고 싶을 때 그 생각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한두 마디 더 하고 싶을 때마다 ‘김치찌개, 김치찌개’ 하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그냥 내버려 두면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고 믿으시는 분이고, 저도 그걸 믿는 편이에요. 사실 저도 학급 인원수가 50명인데 뒤에서 세야 할 정도로 공부를 등한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어머니는 그냥 모르셨어요. 제가 스스로 느낄 때까지 두신 거죠. 그리고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너무 공을 쏟으면, 그러니까 학원을 보낸다든지 옷을 자꾸 사서 입힌다든지 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나를 너무 사랑한다”보다 “엄마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내가 부족한가 보다” 이렇게 느낄 수 있다고도 하셨어요.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도요. 그래서 그런 것도 생각해 두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쏟는 노력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요.
Q. 그럼 반대로 와닿지 않았던 조언도 있으세요?
엄유진 사실 별로 없어요. 저희 어머니는 절대적인 답을 주는 것처럼 얘기하시지 않아서, 제가 반박을 하고 그러면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시고 하는데, 그런 얘기는 재미가 없어서 기록을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저희가 이렇게 투닥거리면서 장난치다가 툭툭 던지는 말에서 제가 낚시하듯이 건지는 거라서, 어머니 말씀에 거부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Q. 어머니랑 원래 어렸을 때부터 친하셨던 거예요?
엄유진 저희 집은 위계질서가 좀 분명했어요. 아버지를 먼저 존경해야 되고, 밥 먹을 때도 아버지가 드시고 나면 먹는 문화가 있었고요. 저는 잔소리를 듣거나 소소한 교육은 다 오빠한테 호되게 싸우면서 받았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원칙은 한 명한테 권한을 위임하는 거였어요. 한 명에게 힘을 몰아주면 아래 애들이 반항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거죠.
어머니의 건강, 그리고 아버지의 자리
Q. 어머니 건강은 요즘 어떠세요?
엄유진 지난 1월에 잠깐 병원에 입원하셨었어요. 저희가 가능하면 집에 계시길 원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병이라는 게 계속 진행되니까, 결과적으로는 알츠하이머 자체보다도 신체 기능이 하나씩 떨어지면서 걸을 수 없게 된다든지, 대상포진에 걸린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생겨요.
Q. 아버님은 어떠세요? 어머니의 주 보호자이시잖아요.
엄유진 아버지도 지금 여든이 넘으셨는데 파킨슨병이 있으세요. 건강은 더 안 좋으신데도 두 분이 함께 생활하세요. 아버지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끝까지 어머니와 같이 있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가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특히 밤에 섬망 같은 게 오면 힘드실 텐데” 여쭤봤더니, 아버지가 “힘든 건 힘든 건데, 나는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 힘든 상황에 처한 나 자신을 돌보고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시더라고요.
Q. 어머니가 병원 가실 때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셨던 건가요?
엄유진 그때는 집에서 더 이상 계실 수 없는 상태였어요. 대소변 처리가 어렵거나 걸을 수 없을 때는 가족들의 힘만으로 할 수 없거든요. 한 이틀 정도 움직이지 못하시더니 일어서지도 못하시고, 그러면 당연히 대소변에 문제가 생기고요. 체구가 크신데 저희들 힘으로 옮길 수가 없어서 결국 주저앉으신 채로 못 일어나셨어요. 그래서 119를 불렀죠.
Q. 어머니가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걸 느끼셨을 때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엄유진 아프다는 것도, 일어설 수 없다는 것도 인지를 못 하시는 거예요. 환각 같은 게 보이는지 옷의 무늬들을 자꾸 모으시더라고요. 얼굴빛도 좀 노래지셔서 위급한 것 같아 바로 병원에 갔고, 저희가 몰랐던 다른 병명들도 많이 나와서 힘들었어요. 거의 1초 단위로 잊어버리시니까, 그 상황에서 대화가 되는 게 더 신기한 정도였어요.
Q. 그럼 사실 그때가 유진 씨한테 가장 큰 고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엄유진 글을 쓸 때 캐릭터를 만드는 것처럼 이 병을 만든 존재가 있다면,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너무 ‘빌런’일 것 같아요.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괜찮으시니까 ‘기억 잃어가는 것쯤은 함께 커버할 수 있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잖아요. 근데 이 병은 그 관계들을 하나씩 끊어내요. 끊는 것 뿐만 아니라 가장 소중한 상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요. 그런 걸 겪으면서 왜 사람들이 이 병을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몸이 아픈 것보다 낫지 않을까 했는데, 관계가 다 끊어지고 인간 사회 안에서의 기능이 사라져 가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Q. 지금은 그때보다 호전되신 거죠. 댁에 계신 거고요.
엄유진 네, 좀 호전되셔서 아버지랑 같이 계시고, 제가 거의 매일 찾아가서 놀고 오고 그러고 있어요.
Q. 딸로서, 작가로서 어머니의 알츠하이머를 바라보는 시점도 있지만, 아버님이 그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엄유진 아버지는 저보다 훨씬 늦게 인정하셨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원래도 사이가 굉장히 좋고 돈독하신데, 제가 거기 개입하는 셈이잖아요. 처음에 “어머니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저한테 해방감을 주기도 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진단을 받으신 이후에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환자로 대하지 않으시고, 굉장히 사랑하는 동지, 인생의 파트너로 대하셨어요. 지금도 환자로서 대해야 하는 기술적인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끝까지 인간적으로 대하실 거예요. 저도 그렇지만, 그 부분에서 아버지께 되게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철학자처럼 말씀을 너무 잘하시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화려하게 표현하셔서, 어머니가 늘 “차라리 진실되게 살아보라”고 질색을 하셨었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진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버지가 하신 행동은 그 허황돼 보였던 말들과 일치하는 거예요. 제가 늘 ‘말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진짜로 그렇게까지 실현되는 걸 보면서 놀랐죠.
Q. 그럼 알츠하이머 이후 두 분의 일상은 어땠어요?
엄유진 그것도 과정이 있었어요. 유머의 힘이라는 게 어려운 상황에 새로운 탈출구를 항상 만들어줘서, 아버지는 저보다 더 유쾌하세요. 그래서 아버지가 우울하다거나 상심했다는 걸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그게 고스란히 어머니한테도 전달이 돼요. 지금도 손을 잡고 유쾌하게 TV를 보고 계시고요.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CT 촬영을 하러 가야 하는데 어머니가 거부하실 때, 저는 설득하다가 거의 싸우기 직전이었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요즘엔 포토샵이 발달했으니까 예쁘게 찍어달라고 해”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머니가 깔깔 웃으시고는 “그럼 가볼게” 하세요. “아버지가 의사 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싶을 정도로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최근에는 공황장애 같은 게 오면서, 어머니가 “심장이 멈췄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엄마, 심장이 멈췄으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겠어, 심장은 멈추지 않았어” 하고 설득하는데, 아버지가 방에서 달려나오시더니 “여보, 심장은 원래 뛰지 않는 거야. 나이 들면 심장 뛰지 않는 거야”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게 말이 안 되니까 쓸 수 없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그래” 하고 받아들이시더니 “노인들은 이렇게 열심히 뛰고 운동해야지 뛰는 거지” 하시니까 어머니가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하시면서 진정이 되더라고요.
아버지만의 유머 감각과 창의성이지만, 어떻게든 어머니를 안정시키려는 목표가 있으신 거고, 그렇게 창의적으로 많이 해결해 오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신의 일부”라고 하신 게 그냥 말뿐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정말 하나가 되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모습을 하루하루 보고 기록하고 하니까 너무 슬프지만은 않아요. 정말 어려운 일이 있고 쓰러지고 울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들도 분명히 있어요.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금방 다시 저를 끌어올려 주는 건 주변의 관계들이에요. 제 딸도, 제 남편도요. 제가 깊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으면 누군가는 손을 잡아주고, 또 그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땐 제가 그런 사람이 되어 줘야 하는 거고요. 그렇게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비극적인 상황만은 아니고, 우리가 잘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아까 그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불완전함’이 핵심이었네요.
엄유진 맞아요. 사실 저는 이런 걸 절대 못하는 사람인데, ‘내가 못해도 돼, 실수해도 돼’라고 생각하게 돼요. 왜냐하면 어머니가 말씀하신 게, 제가 잘 못할수록 그걸 보고 오히려 희망을 가지고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좋은 일 하는 거라고 하셨거든요.
요양 병원, 그리고 다시 집으로
Q. 어머니를 그렇게 사랑하시던 아버지시잖아요. 최근 어머니 병세가 좀 악화되면서 아버지가 굉장히 힘들어하셨을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 같고요.
엄유진 제가 기억나는 한 순간이 있는데, 아버지는 항상 씩씩하셨어요. 근데 어머니에게 새로운 증세가 나타났는데, 섬망이었어요. 이게 정신이 완전히 다른 데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굉장한 불안감이 몰려오면서 집을 나가려고 하시고, 주변 사람을 적으로 인식하기도 하고요. 밤낮으로 계속될 때도 있고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실 때도 있어요. 나중에는 아버지가 “제발 살려주라, 내가 죽을 것 같다”고 하실 정도로 힘들어하셨다는 걸 전해 들었어요. 그때 제가 요양병원 같은 걸 다 알아봤어요. 아버지가 그 결정을 하실 수 없으니 제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너무 슬펐어요. 저희는 함께 살기만 하면 다른 건 바라는 게 없거든요. 근데 그걸 어머니 본인도 모르게 거부하시는 거잖아요. 아버지도 살고 싶지 않다 하시고, 어머니도 죽고 싶다 하시고. 제가 이렇게까지 왔어야 될까, 보지 않아도 될 걸 보게 되는 기분이었어요. 저도 의지가 많이 꺾이는 일이었고, 너무 힘들었어요.
Q. 병원에 몇 개월 계셨던 거예요?
엄유진 한 2주 정도요. 간병은 저랑 해외에서 일하던 오빠가 와서 둘이서 했고, 요양보호사님이 다행히 도와주셨어요. 다른 분은 간병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어머니가 받아들이질 않으시니까요. 저도 그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시설을 알아보거나 전문가를 고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어려운 상황이 닥치니까 그게 안 되더라고요.
Q. 그러면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내가 뭘 할 수가 없으니까 더 힘드셨겠어요.
엄유진 아버지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다 하셨어요. 저희가 그렇게 어려웠을 때 결국 어머니가 입원하신 거예요. 상황이 극도로 안 좋아진 거였죠. 그런데 막상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아버지가 너무 쓸쓸해 보이는 거예요. 저는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동안 아버지가 좀 쉬셨으면 했는데, 막상 간병하다가 아버지를 뵈러 잠깐 가면 집에 아버지 혼자 계신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힘들어도 같이 계셔야 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어머니 없이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입원해 계신 2주 동안 회복이 되시는 거예요. 절대 걸을 수 없으실 것 같았는데, 의료진들이 보기에도 관절염이 너무 심한데도 걸으시더라고요. 치료를 2주는 더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링거를 다 빼고 진짜 집에 가신다고, 아버지를 보러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집에 가야 된다’는 섬망 증세를 거의 1년 넘게 겪었었는데, 예전에는 집에서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가시겠다는 거니까 그건 저희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어머니 건강 상태로는 저희가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저희 어머니가 정말 헐렁한 상태로도 다 하고 집에 가신다고 하시니까요. 의사 선생님도 오셔서 일단 집에 가시고 다시 상의해서 오시라고 하셨어요.
그날 너무 무서웠어요. 이 상태로 집에 모시고 가면 다시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119를 부르고 아버지와 계시다가 큰일이 생기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되게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좀 걷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셨고요. 돌아오셨는데,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시는데 아버지가 되게 예쁜 조끼를 입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조명까지 해두셨더라고요.
Q. 아, 진짜 멋쟁이시다.
엄유진 아버지가 어머니 들어가시는 걸 보고 “와, 파티하자” 하시고, 어머니는 너무 행복하신 거예요. 몇 년 만에 집에 온 것처럼요. 그 순간은 제가 당연히 영상도 다 찍었어요. 저한테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지금은 다시 안 좋아지고 계시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행복하게 지내던 기간이었어요.

Q.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 돌발적인 분노가 많아진다고 들었는데 어머니 경우는 어떠세요?
엄유진 원래도 저희 어머니가 그런 화가 좀 있으시긴 했어요. 삐짐이나 잔소리, 불평, 하소연 이런 건 없으신데, 한 방에 내지르는 화가 있으신 편이었죠. 그게 좀 자주 오고, 특히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보다 엄마를 도우려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때는 좀 힘들어요. 그게 제일 힘들죠. 인격이 바뀐다고들 하잖아요.
‘아니다, 이건 증상이고 병이다’라고 생각했을 때는 무조건 감정을 사용하지 말아야 해요. 정해진 매뉴얼이 있거든요. 알츠하이머 환자들도 증상이 되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그냥 아픈 거다, 알츠하이머 증상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되게 명확하게 구분돼요. 매뉴얼대로 했어야 했는데, 제가 어제는 그만 못 지켰네요.
어제는 어머니가 강의를 가셔야 된다고 하시는데, 그게 10년 전 기억이잖아요. 제가 그때 염색을 하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보통 때 같으면 “할머니가 모시러 갈 거야”, “오빠가 모시러 갈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때는 이게 거짓말이 갑자기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지금 나가면 위험하고, 엄마가 여기가 집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증상이야”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시원하게 화를 내시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계속 겪으면 노하우가 생기는데, 그 에너지를 다 사용하면 다시 돌아오세요. 그래서 최대한 잘 맞춰드려야 하고, 그게 진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해 온 추억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이별
Q. 그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이별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하신다고요.
엄유진 어머니는 “가르친다”고 말하지 말라 하셨는데, 저는 좀 배운다는 느낌을 받아요. 처음에는 계속 엄마를 돕는다, 어떤 면에서는 간병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딱 8년이잖아요. 펀자이씨툰을 기록한 것도 8년이고, 알츠하이머가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라고 하면, 그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어머니로 인해서 그게 마치 한 챕터 한 챕터의 수업인 것처럼 느껴져요.
지금은 총 12챕터 중에 한 10챕터 정도 왔다고 생각이 되고, 엄마가 지금은 이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시는 거구나 싶어요. 갑작스러운 이별은 너무 힘들잖아요. 이별이 다가왔는데 같이 있지 못했던 마음도 너무 힘들 것 같고요. 근데 저는 지속적으로 어머니로부터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받았어요. 그리고 무조건 오래 사셔야 한다, 건강하셔야 한다는 것도 사실은 욕심이 아닐까 싶어요. 엄마가 걸리면 안 될 병에 걸리고 우리가 비극적인 상황을 만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엄마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마지막 시간을 같이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오늘 너무 피곤한데, 하면서 갔어도 돌아올 때는 즐거운 기분이 되어 있을 때가 많아요.
역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Q. 작가님의 궤도 이탈 사건이 됐던 엄마의 알츠하이머병이 이제는 작가님의 일상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진단 이전과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뭐가 있을까요?
엄유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누가 보호자가 되느냐인 것 같아요. 제가 성인이 됐어도 어머니께 많이 의지하고 조언을 구했었는데, 이제는 서서히 제가 어머니를 돌보게 됐어요. 병원에 가야 할 때 전에는 어머니가 운전대를 잡으셨는데, 이제는 제가 잡는다든지 하는 게 제일 큰 변화고, 그 과정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굉장히 자존심도 강하고 독립적인 분이셔서요. 처음 병원에 모시고 가는데 어디가 어딘지, 수납이 뭔지도 모르고 운전할 때 길도 잃고 하니까 어머니가 “아휴, 저게 내 보호자라니” 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내가 엄마에 비해 이 역할을 하기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엄마와 달리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지속하는 것, 끈질기게 찾아뵙는 것,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은 거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도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못 견디는데, 저는 여러 번 다시 대답해 드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랑 어머니는 잘 해온 것 같아요.
Q. 그럼 반대로 달라지지 않은 건 뭐가 있어요?
엄유진 달라지지 않은 건, 우리가 엄마와 딸이라는 거예요.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니까, 역할이 좀 바뀌긴 했지만 거기서 되게 안정감을 느껴요.
궤도 이탈, 그리고 제자리의 일상
Q. 작가님이랑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궤도를 이탈했다는 건 일상이 무너진 게 아니라 어떤 새로운 궤도를 하나 더 갖게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제자리의 일상’은 어떤 걸까요?
엄유진 ‘제자리’라는 말이 어떤 의미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제자리라고 하면 우리가 항상 같은 자리여야 될 것 같지만, 제 생각엔 저의 변화와 균형에 따라 그 제자리라는 것도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궤도’라는 말도 어떤 구심점이 있잖아요. 만약 그게 ‘어머니를 잃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 ‘젊음을 잃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 같은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큰 좌절일 텐데, 저는 우리의 관계, 사랑하는 관계가 딱 구심점에 있으니까 어머니가 아무리 약해져도 우리가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일이 생기면 아마 궤도가 좀 바뀌겠지만, 모양이 좀 더 커질 수도 있는 거고요. 저는 강력한 중심이 있으니 어머니가 너무 이탈하지 않도록 조금 도와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지금은 오히려 되게 안정적인 기분이 들어요. 새로운 일상 속에 있다는 느낌이요.
<제자리로 돌아오면 모두 다 일상> 2화 영상 보러가기

